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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25) 정전 협정 (Armistice Agreement, 停戰協定 ) 이란?

by 버들도령 201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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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 정전 협정

 정전 협정은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사이에 체결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 협정은 판문점에서 체결되었으며, 6·25 전쟁의 정지와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모든 무장 행동을 완전히 정지시키기 위해 체결되었다.

 1948년 8월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같은 해 9월 북한에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북한은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고 중국에도 1949년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자, 무력 통일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미국이 1950년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였는데, 애치슨 라인에 한반도가 포함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받아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착수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하였다. 이후 유엔군이 참전하여 전세를 역전하였지만, 중공군이 참전하여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하였다. 이에 유엔군과 중국군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여 정전 협상을 시작하였다.

정전 협정은 양측의 대립으로 1953년에 가서야 체결되었다.

6.25 전쟁 / ⓒ (주)천재교육

 

한국 전쟁 휴전협정서 제1권

 한국전쟁을 중단하게 한 휴전협정.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을 위한 노력은 6·25 발발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시도 되었다. 1950년 12월 14일, 유엔은 한국에서 정전을 위한 총회결의를 했고 이를 위해 중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과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은 1951년 6월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논의한 뒤 소련에서 먼저 협상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6월 16일 트뤼그베 리 유엔사무총장은 휴전 보장 성명을 발표했고, 6월 23일에는 야콥 말리크 대사가 유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전을 위한 대화를 촉구함으로써 본격적인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어서 27일에는 그로미코 소련 외무차관이 휴전 제안 성명을 발표했고, 30일에는 리지웨이 장군이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을 통해 휴전협상을 제안했다. 1951년 7월 1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공동으로 휴전협정 동의를 발표했다.

 1951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59차 휴전회담 본회의에서 유엔군측 수석대표 W.K. 해리슨과 공산군측 대표 남일이 세 통의 휴전협정서와 부속문서에 각각 서명한 뒤 M.W.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 펑더화이가 각각 후방사령부에서 서명했다. 협정서는 서언과 5조 63항으로 구성된 전문, 11조 26항의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문·영문·한문으로 작성되었다.

 전문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한국에서의 전투행위와 모든 무력행동을 완전히 종결시킬 정전을 목적으로 체결되었다. 휴전의 성격은 순전히 군사적인 것으로 6·25전쟁에서의 교전국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① 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양측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씩 후퇴하여 완충지대로서 비무장지대를 설치한다.
 ② 군사정전위원회를 구성하여 휴전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며, 스웨덴·폴란드·스위스·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국으로 중립국감시위원단을 구성하여 군비증강을 감시·조사하게 한다.
 ③ 양측이 억류하고 있던 포로를 송환할 것과 본국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단에 인도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 협정으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 만에 휴전되었다.

 남한은 전쟁의 주된 교전국이었지만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또한 정전협정은 남한 그대로 전쟁을 일시 중지시킨 것이지 항구적인 평화장치가 아니어서 그동안 남북한은 정전협정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여왔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미국과만 평화협정 맺기를 고집했지만 남한과 미국이 반대하여 종전협정이 체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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