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항공기(여객기, 민항기) 격추 사건 목록 - Airliner shootdown
1930년대 |
1938년 8월 24일 : Kweilin 사건
이 사건은 적대세력의 공격을 받은 최초의 상업용 여객기로 추정됩니다.
1938년 8월 24일 (당시는 제2차 청일전쟁 중) 중국 국가항공공사(CNAC)와 팬아메리칸(PANAM)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더글라스 DC-2호기인 Kweilin은 18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홍콩을 출발하여 중국 충칭으로 향하던 중 홍콩 바로 북쪽의 중국 영공에서 일본 항공기의 공격을 받고 강위로 불시착을 하게 됩니다.
이 여객기 Kweilin은 일본 항공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강물 위에 불시착 하였으나, 일본 항공기의 기총소사와 공격을 받고 물속으로 가라앉았으며, 이로인해 15명이 사망하고, 미국 조종사 휴 L. 우즈와 다른 두 명은 살아 남았습니다.
사망자들 중에는 후윤(Hu Yun), 싱글로 (Singloh Hsu), 왕유메이 (Wang Yumei) 등 중국의 저명한 은행가 세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인들이 이 비행기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 대통령의 외아들인 쑨 포(Sun Fo)에 대한 암살 시도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를 놓쳐서 탑승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나중에 비행기는 개조되어 "청킹(Chungking)"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고, 이후 1940년에 두 번째 총격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1940년대 |
1940년 6월 14일 : Kaleva OH-ALL 사건
Kaleva OH-ALL 사건은 1940년 6월 14일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 가는 도중 두 대의 소련 IL(Ilyushin, 일류신) DB-3T 폭격기에 의해 격추된 민간 수송기이자 여객기(Junkers Ju 52-3/mge)였다.
이것은 겨울 전쟁이 끝난 지 3개월 후, 핀란드와 소비에트 연방(소련)사이의 임시 평화 기간 동안, 그리고 지속 전쟁이 시작되기 1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탈린에서 이륙한 지 몇 분 후, 갈레바는 소련 IL(Ilyushin, 일류신) DB-3T 폭격기 2대에 의해 요격되었습니다.
폭격기들의 기관총 사격으로 인해 갈레바가 심하게 파손되어 에스토니아의 케리 등대에서 북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추락하였고,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탑승객 7명과 승무원 2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1940년 10월 29일 : CNAC(중국 항공 회사) Chungking 사건
1940년 10월 29일 CNAC(중국 항공 회사)에서 운항중이던 더글러스 DC-2 청킹(Chungking)호가 중간 경유지인 중국 윈난의 창이 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비행장을 공격하고 있던 일본군 전투기가 청킹호에 기관총 사격을 실시하여 승객과 승무원 12명 중 9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의 청킹(Chungking)호는 1938년 8월 24일에 일본군에 공격을 받은 더글라스 DC-2호기인 Kweilin을 개조 후 Chungking으로 이름을 바꾼 기체였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비행기에 불이 붙고, 폭발하게 되어 다시는 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42년 3월 3일 : 네덜란드령 인도 항공 DC-3
PH-ALP Pelikaan (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했을 때 KLM 여객기 중 하나)으로도 알려진 PK-AFV 는 1940년부터 KNILM이 운항하는 Douglas DC-3 여객기였습니다 .
1942년 3월 3일,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자바 반둥에서 호주 브룸으로 가던 네덜란드령 인도 항공 더글러스 DC-3가 서호주 킴벌리 해안 부근을 비행 중 일본 해군 항공대 소속의 미쓰비시 A6M 함상 전투기 3기로부터 공격을 받고 해안가의 모래 사장에 불시착하게 하게 됩니다.
PK-AFV는 불시착 후 기관총 공격을 받게 되고, 승객과 승무원 12명 중 4명(아기 포함)이 총격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또한 비행기에는 당시 환율로 추정 150,000 ~ 300,000 파운드 (2019년 기준으로 약 7~15백만 파운드)의 다이아몬드를 싣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 대부분이 바닷 속으로 사라지거나 도난당했습니다. 또한 다음날 상공을 통과하던 97 식 비행정이 기체에 두발의 시인 폭탄을 투하했지만 기체 · 승객과 승무원에게 피해는 없었습니다.
1943년 6월 1일 영국 해외 항공(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777편
1943년 6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포르텔라(Portela) 공항에서 잉글랜드 · 브리스톨 공항으로 가는 영국 해외 항공(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777편 ( 더글러스(Douglas) DC-3 G-AGBB )가 나치 독일의 융커스(Junkers) Ju 88 폭격기 8대로부터 공격을 받고 비스케이(Biscay)만에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17명 전원이 사망했다
1943년 10월 22일 AB 항공 운송 SE-BAG 그리펜
1943년 10월 22일 23시 03분에 AB Aerotransport(항공운송) (ABA) Douglas DC-3-268 (SE-BAG, 그리펜 Gripen)은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독일의 Junkers Ju-88 Luftwaffe 전투 폭격기에 의해 격추되었습니다. 조종사는 바다에 강제 착륙을 시도했지만 비행기가 스웨덴 할로 섬의 절벽으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SE-BAG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15명 중 13명이 사망하였으며, 다행히 비행기의 뒤쪽에 있던 비행 엔지니어와 승객등 두명은 튕겨져 나와 살아 남았습니다. AB Aerotransport (ABA)는 이 사건으로 항공 운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했습니다.
1950년대 |
1954년 7월 23일 캐세이 패시픽 항공 DC-4
1954년 7월 23일 방콕에서 출발하여 영국령 홍콩으로 운행중이던 캐세이 패시픽 항공의 더글러스 DC-4 (등록 기호 VR-HEU)이 중국의 하이난 섬 앞바다 37km의 남중국해 위를 비행 중 갑자기 나타난 중국 인민 해방군 공군의 La-11 전투기 2대에 총격되어 하이난 섬 앞바다에 불시착했다.
중국 인민 해방군 공군이 영공 침범 한 것도 아닌 민간 항공기를 왜 사전 경고없이 공격하고 격추했는지에 대한 사건의 핵심 부분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명확하게 보고되지 않았고, 중화 인민 공화국 정부에서의 사과도 사정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 중화 인민 공화국의 협의 결과, 캐세이 패시픽 항공에 268,500 파운드를 지불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인민 해방군 공군 내부의 판단 미스가 그것을 암암리에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왜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1955년 7월 27일 엘 알 항공 402편 (El Al Flight 402)
4X-AKC로 등록된 록히드 L-149 Constellation인 El Al Flight 402는 1955년 7월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이스라엘 텔아비브까지 가는 여객기이다.
이 항공기는 유고 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베오그라드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의 영공을 침범하였고, 스크램블(scramble, 전투기가 적기의 기습에 대해 요격할 태세를 갖추어 긴급 발진하는 일) 발진한 불가리아 공군의 MiG-15 전투기 2대 (Petrov와 Sankiisky 조종사)에 의해 강제 착륙을 지시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계속 비행을 합니다.
"비행기가 명령을 어기고 우리 영토를 떠나 더 이상 경고 할 시간이 없다면 쏴 버려라"는 불가리아 공군 방위 차장 벨리 치코 게오르기프 (Velitchko Georgiev) 장군의 명령을 받고 출동했던 두대의 MiG-15 조종사들은 엘 알 항공 402편을 공격하게 됩니다.
결국 불가리아의 MiG-15에 의해 공격을 받고, 페트리치(불가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블라고에브그라드 주의 도시) 상공에서 공중 분해되어 승무원 7명과 승객 51명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1960년대 |
1961년 9월 18일 Ndola UN DC-6 격추
1961년 9월 18일 유엔 사무총장인 Dag Hammarskjöld와 15명의 사람들을 태운 유엔의 더글러스 DC-6 비행기가 현재의 Zambia의 북부 로디지아에서 격추되었습니다. Hammarskjöld는 콩고 위기 동안 휴전을 협상하기 위해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추락 사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는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지만, 2014년에 발표된 증거는 비행기가 벨기에 용병 조종사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62년 6월 30일 아에로플로트 902편 (Aeroflot Flight 902)
1962년 6월 30일 소련의 하바로프스크 공항에서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 공항으로 향하던 국내선정기 운항편인 아에로플로트 902편 (투폴레프 Tu-104A)가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서 동쪽으로 28km (17 마일) 지점에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84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추락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동체 객실쪽에 남아있는 외부 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나 시체에 남겨진 비산물에 의한 손상, 그리고 같은 영공 부근에서 소련군 방공 부대에서 지대공 미사일 발사 훈련중에 있었고, 대공 미사일이 궤도를 벗어났다는 비공식 확인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
1973년 2월 21일 리비아 아랍 항공 114 편
1973년 2월 21일 리비아의 트리폴리 국제 공항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하여 이집트 아랍 공화국의 카이로 국제 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리비아 항공 114편 (보잉 727)이 13시 44분경 이집트 북부 상공의 악천후와 계기 고장 및 시야 불량으로 인해 시나이 반도를 넘어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 영공을 침범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공군의 팬텀 II 2기가 스크램블 발진하여 114편의 강제 착륙을 수행하려고 했지만 114편 승무원들이 이를 거부하고 운항을 계속하게 됩니다.
팬텀 II는 114편에 대해 공격을 시작하여 격추되고, 114편은 비상 착륙을 시도했지만 착륙 전에 오른쪽 착륙 장치 부근에서의 폭발로 인해 수에즈 만에서 동쪽으로 약 15km (약 10 마일) 지점에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113명 중 108명이 사망했고, 부조종사를 포함한 5명이 생존했습니다.
1975년 9월 30일 말레브 항공 240편
말레브 항공 240편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리헤기 국제공항에서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으로 가는 정기 운항편입니다. 1975년 9월 30일, 이 항로를 운항하던 항공기는 마지막 착륙 접근 중이던 말레브 헝가리 항공의 투폴레프 Tu-154기가 레바논 해안에 추락했습니다. 탑승객 50명과 승무원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헝가리 당국의 추락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 원인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항공기는 레바논 내전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어 최종 접근 중에 격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키프로스에 있는 올림푸스 레이더 시스템으로부터 탐지되었고, 요격미사일 두발이 비행기 후방에 명중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있음)
1978년 4월 20일 대한 항공 902 편
1978년 4월 20일,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대한민국 김포 국제 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 902편(KAL902, KE902, 보잉 707-321C기종)이 나침반의 고장으로 그린랜드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됩니다.
소련 영공을 침범한 이후에도 소련의 북방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콜라 반도 상공에서 남쪽으로 (즉 내륙으로) 비행을 계속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련 공군의 수호이 Su-15 요격 전투기 2기가 출격하고 위협사격을 하게 됩니다.
대한항공 902편의 조종사는 전투기의 접근을 알아차렸고, 위협사격을 받았을때 "전투기와의 교신을 시도했지만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소련측은 반대로 "교신이 무시됐다"고 주장합니다. 어느쪽의 주장이 옳든 그르던간에 902편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남쪽으로 비행을 하게 됩니다.
위협 사격을 한 직후, 수호이 Su-15에서 발사 된 적외선 유도식의 R-98T 미사일 1발이 902편 좌익 외부 엔진 부근에 명중하고, 주날개 끝이 떨어져 날아갑니다. 동시에 비산하는 파편에 의해 객실의 일부도 파괴되고, 일반석에 탑승하고 있던 일본인과 한국인 승객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902편은 소련 Su-15기의 공격 후에도 비행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투기의 선도하에 무르만스크 교외의 얼어붙은 이만다라 호수에 불시착합니다. 이 사고로 두 명의 승객이 사망했고, 107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비행기가 얼어붙은 호수에 동체 비상 착륙 후 살아남았습니다.
비상 착륙한 비행기는 다행히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으며, 비행기로부터 탈출했던 승무원과 승객들은 추위를 피해 기내로 돌아와 머뭅니다.
불시착에서 약 2시간 후에 소련 당국과 소련군이 현장에 도착하고, 승객과 승무원은 헬기와 장갑차에서 현지 정부 시설에 수용되고, 부상자는 즉시 병원에 이송 되었습니다.
또한, 승객과 승무원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았고, 즉시 따뜻한 식사가 준비되었으며, 시간 보내기 위해 영화 상영까지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4월 23일에 조종사와 항법사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귀국길에 오르고, 기장과 항법사는 조사를 위해 레닌 그라드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송된 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향한 영공 침범에 대한 사과문에 서명하고, 1주일 후에 풀려나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 9월 3일 에어 로디지아 항공 825편 (Air Rhodesia Flight 825)
Air Rhodesia 항공 825편(Vickers Viscount 782D)은 Kariba 와 Salisbury , Rhodesia (현재 짐바브웨 Harare, 짐바브웨) 사이의 정기노선 비행기로, 1978년 9월 3일 짐바브웨 인민혁명군(ZIPRA) 게릴라가 Strela 2 지대공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추했습니다 .
Vickers Viscount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 56명 중 18명이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생존자 중 10명은 사고 현장에 온 인민 혁명군 게릴라에 의해 사살당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인민 혁명군 게릴라를 피해 덤불에 숨어서 피한 3명과 혁명군 도착 전에 물을 찾아 현장을 떠나있던 5명 등 총 8명이었습니다.
1979년 2월 12일 에어 로디지아 항공 827편 (Air Rhodesia Flight 827)
Air Rhodesia 항공 827편(Vickers Viscount)은 Kariba 와 Salisbury, Rhodesia (현재 짐바브웨 Harare, 짐바브웨) 사이의 정기노선 비행기로, 1979년 2월 12일 ZIPRA 게릴라들이 5개월 전 비행기 격추와 비슷한 상황에서 스트렐라(Strela) 2 지대공 미사일을 이용해 격추시켰습니다.
비커스 비스카운트(Vickers Viscount)의 승객과 승무원 59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항공편은 로디지아 군의 수장인 피터 월스 부부가 탑승 예정이었으며, 이들 2명을 암살할 계획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전에 다른 항공편에 탑승하여 사고를 피했습니다.
1980년대 |
1980년 6월 27일 Itavia 항공 870편
1980년 6월 27일 이탈리아 볼로냐 보르고 빠니고레 공항에서 팔레르모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이타비아 항공 870편 (맥도널 더글러스 DC-9-15)이 티레니아해 상공에서 갑자기 폭발하여, 우스티카 섬 근처의 바다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81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그 원인은 수십 년간 계속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 항공기는 NATO와 리비아 군용기가 관련된 군사 작전 중에 우연히 격추되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론은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폭격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2013년 1월 23일, 이탈리아 최고 형사재판소는 "미사일에 의해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1980년 2월 8일 린하스 에레아스 데 앙골라 야코블레프 Yak-40
1980년 2월 8일 TAAG 앙골라 항공의 야코블레프(Yakovlev) Yak-40 (LinhasA-TYPE 항공기)이 앙골라 마타라(Matala)에 근처에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1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Flight International에 따르면 Jamba (Jamba)에서 Lubango (SDD)까지 국내선으로 운항하고 있었습니다. 앙골라 당국은 15:15에 비행기가 이륙했다고 국제 민간 항공기구(ICAO)에 보고했습니다. 그 후 15시 32분에 항공기는 '외국 항공기의 행동'에 따라 공격을 받았을 때 추락했습니다.
Matala는 루 방고에서 동쪽으로 1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 항공편이 루방고에서 잠바로까지의 경로 라우팅 된 것 같습니다. 마탈라는 루방고 동쪽 약 155km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고 항공편이 루방고에서 잠바까지 항공기 경로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에 따르면 Yak-40은 잠비아 선양 J-6 혹은 MiG-19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을 수 있다고 합니다.
1983년 9월 1일 대한 항공 007편 (KAL007 및 KE007이라고도 함)
1983년 9월 1일, 미국 존 F 케네디 국제 공항을 출발해서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국제 공항을 경유한 후 대한민국 김포 국제 공항으로 향하던 대한 항공 007편 (KAL 007 또는 KE007, HL7442 라고도 함, 보잉747)이 항법 실수로 소련 영공을 침범하고, 소련 방공군의 Su-15TM 요격 전투기의 경고 사격(예광탄이 없어서 일반 철갑탄 발사)에도 007편 승무원들은 이를 모르고 계속 운항을 하게 됩니다.
이에 소련 전투기는 미사일 2발을 발사하고, 007편 꼬리 날개에 명중한 후 사할린 섬 서쪽 모네론 섬 인근 해상에 추락하여, 미국 하원의원 래리 맥도널드 하원의원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공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항법 시스템 구성 시 조종사의 실수로 인해 항로 편차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소련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했던 보수 공화당원들인 노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원인 제시 헬름즈와 아이다호 상원의원인 스티브 심즈, 켄터키 주의 민주당원인 하원의원 캐롤 J. 허바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30주년을 기념하여 KAL 007을 타고 서울로 비행할 예정이었으나 대신 KAL 015에 탑승하여 서울로 가기 전 앵커리지 공항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헬름즈 상원의원은 KAL 007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던 노엘 (5살)과 스테이시 (3살) 그렌펠 자매와 친해졌다. 헬름즈 의원은 그때 그 자매를 만났던 것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 비행기가 앵커리지 공항에서 우리 비행기 옆에 바로 있었던 그날 밤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 자매와 그 부모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죠. 비행기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했던 마지막 행동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사랑해요”라고 수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겁니다.
# 당시 요격기의 조종사는 겐나디 오시포비치(2003년 당시 61세)이다. 그는 관제소로부터 KAL기를 국제관례에 따라 유도착륙시키라는 명령을 받고서 여객기에 300m까지 근접, KAL 007기와 같은 고도로 날아가면서 전투기 날개 쪽에 달린 경고등을 깜박거리며 수 차례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KAL기는 비행을 계속했으며, 조명탄을 4차례 발사했는데도 여객기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도를 높이자 관제소로부터 격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일어난 상황은 이러하다. 공격이 있었을 당시, 비행기는 35,000 피트 정도의 고도에서 항해 중이었다. 충격을 받은 즉시, 기수가 오르고 (승강타를 연결하는 케이블 위의 십자관이 잘리거나 심하게 손상됨에 따라) 비행기는 38,250피트로 상승했다. 천 기장은 자동 조종장치를 끄고 비행기를 수동 조종하여 35,000 피트의 원래 고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평 비행을 하다가 1분 30초 만에 점진적인 하강을 시작했다.
그가 발사한 조명탄 미사일 4발에는 모두 250여발의 산탄이 있었는데, 여객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또한 여객기 창문을 들여다 보아도, 내부에 어떤 사람의 움직임도 볼 수 없었으며, 2003년 현재에도 자신은 정찰기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여객기에는 대한항공 마크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1996년 소련 조종사인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KAL 007이 민간 비행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두 열의 창문을 보았고 보잉기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민간 여객기였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나 이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민간 여객기를 군사용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니까요.
# (뉴욕 타임즈 인터뷰, 1996년 9월 9일).
사고 후 소련은 그것이 민간 여객기인지 몰랐으며, 미국이 소련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한 고의적인 도발로 오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으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였다.
2005년 8월 31일, 러시아 전쟁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러시아 일간지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에 기고한 KAL기 참사 22주년 특별기고문에서, 사고 관련자들의 인터뷰 기록 등을 토대로, KAL기가 나토 첩보정찰기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극동군사령관인 이반 트레치야크가 KAL기가 영공에 들어온 직후부터 나토 특수부와 주고 받은 교신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한 진짜 블랙박스는 아직도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과 한국 정부는 개인의 주장일 뿐이라며 무시했다.
사고 당시 인근 상공에서는 치열한 미국 소련 일본의 정보전쟁이 진행중이었다.
1985년 2월 24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 해양 연구소 도니 228
1985년 2월 24일 세네갈 다카르 요후 공항에서 스페인 왕국 란자로테(Lanzarote) 공항으로 가는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 해양 연구소가 소유한 Dornier Do 228 (Polar 3호기)가 서부 사하라 상공을 비행하던 중 모로코의 정찰기로 오인된 폴리사리오 전선의 게릴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격추되어, 승무원 3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격추 몇 분 전에도 극지 해양 연구소 소유의 Dornier Do 228 Polar 2호기가 동일한 공역을 통과하고 있었지만, 이쪽은 공격을 받지 않고 서부 사하라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9월 4일 바흐타르 아프간 항공 안토노프 An-26
1985년 9월 4일(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칸다하르 국제공항에서 파라 공항으로 향하던 바흐타르 아프간 항공사 Antonov An-26 (YA-BAM)이 칸다하르 근처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습니다. 이 항공기에 탑승했던 47명의 승객과 5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1987년 6월 11일 바흐타르 아프간 항공 안토노프 An-26
1987년 6월 11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칸다하르 국제 공항에서 카불 국제 공항으로 향하던 바흐타르 아프간 항공 안토노프 An-26 (YA-BAL)이 Khost 상공을 비행 중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하여, 승객과 승무원 55명 중 53명이이 사망했습니다.
1987년 10월 14일 Zimex Aviation 록히드 L-100, 앙골라
1987년 10월 14일, 스위스 회사인 Zimex Aviation 항공이 소유하고 국제 적십자 위원회(ICRC)를 대표하여 운영하던 록히드 L-100 헤라클레스 (HB-ILF)가 앙골라 쿠토 공항을 출발한 지 약 4분 후에 격추되었습니다. 앙골라 내전 당시 알 수 없는 전투원들에 의해 발사된 미지의 발사체에 의한 공격을 받고 추락하여 승무원 4명과 승객 2명이 사망했으며, 지상에 있던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공격한 인물 및 발사된 물체에 대해서는 앙골라 내전중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87년 11월 6일 말라위(Malawi) 항공 7Q-YMB
1987년 11월 6일, 말라위 찌레카 국제 공항 에서 릴 롱궤 국제 공항 가는 에어 말라위 항공의 Shorts Skyvan 7Q-YMB 항공기가 모잠비크 내전이 진행중인 모잠비크 인민 공화국 울롱웨 상공을 통과 할 때 공격을 추락했습니다. 승객 8명과 승무원 2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1988년 7월 3일 이란 항공 655편
1988년 7월 3일, 이란의 반다르 아바스 국제 공항에서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 국제 공항을 운항하는 이란 항공 655편 (에어버스 A300)가 페르시아만 상공을 비행 중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중인 미국 해군 미사일 순양함 USS 빈센스에서 발사한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되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반다르 아바스와 두바이 사이에서 파괴되었고, 290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으로는 이란 항공 655편의 이륙 직후에 미군 순양함 빈센스함이 반다르 아바스 국제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이란 공군의 F-14의 신호를 잘못 수신하였고, 상승 비행 경로에 있던 에어버스 A300인 IR655편을 USS 빈센스함에 하강하면서 공격을 시도하는 이란 공군의 F-14로 오인하여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1988년 12월 8일 T&G항공 DC-7
1988년 12월 8일 세네갈 다카르 요후 공항에서 모로코 이니즈간 공항으로 가는 미국 국제 개발청이 전세낸 더글러스 DC-7이 서부 사하라 상공을 비행하던 중 모로코의 C-130 허큘리스와 오인한 폴리사리오 전선에 의해 격추되어 승무원 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항공기는 모로코에서 "독점 통제 임무"를 위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1990년대 |
1992년 3월 27일 아제르바이잔 군에 의한 아르메니아 항공기 격추 사건
1992년 3월 27일 스테파나커트 공항에서 예레반까지 총 3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Yak-40 여객기가 아제르바이잔 군 수호이 Su-25 전투기에 의해 공격당했습니다.
엔진 고장과 비행기 뒤쪽에 불이 나 결국 아르메니아 영토에 안전하게 착륙하여 탑승중이던 승객과 승무원 34명 전원이 무사했습니다
2000년대 |
2001년 4월 20일 페루 세스나 A-185E 격추
2001년 4월 20일, 세스나 A185E 플로트플레인 등록된 OB-1408 개인 비행기가 페루 국경에 위치한 Mariscal Ramón Castilla 주 상공에서 페루 공군의 세스나 A-37B 드래곤플라이 경공격기에 의해 격추되었습니다. 탑승하고 있던 5명 중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 로니 보우어스와 그녀의 7개월된 딸 샤리티 등 두명이 사망했고, 남편인 짐과 6살 아들 코리는 다치지 않았고, 조종사 케빈 도날드슨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에어브릿지 거부 프로그램 도중 일어났는데, CIA 감시 비행기가 이 수상기를 마약 밀매에 연루된 것으로 오인하고, 페루 공군에 경보를 발령하여 격추했습니다. 1년 후, 미국 정부는 보어스 가족과 조종사에게 8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습니다.
위의 감시 비디오는 페루 공군 비행기가 2001년 4월 20일 촬영한 것으로, 선교사 가족의 비행을 마약 밀매관련한 비행으로 오일하고 기총사격을 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미국과 페루의 합동조사 결과, 비행기 격추에 있어서의 절차상의 오류, 언어 문제, 통신 시스템 과부하 등이 원인으로 밝혀졌다고 하네요.
2001년 10월 4일 시베리아 항공 1812편
2001년 10월 4일, 투폴레프 Tu-154편 시베리아 항공 1812편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도중에 흑해 약 36,000 피트 (FL360) 상공에서 추락했습니다. 잔해는 약 18km²의 면적에 분포되어 해저에 가라 앉았으며, 이 지점에서의 깊이는 약 2000m였습니다.
즉각적으로 의심되는 것은 테러 공격이었지만, 미국 소식통들은 이 비행기가 우크라이나 군사 훈련 중에 크림 반도에서 발사된 S-200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공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주간 항공 위원회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해군이 흑해에서 열린 다양한 대공 미사일의 드론 표적 발사 훈련을 하던 중에 S-200M "Wega-M"미사일 시스템의 5W28 미사일이 목표 드론을 지나친 후 계속 비행하여 시베리아 항공 1812편의 약 15m 근처에서 미사일 탄두가 폭파되었습니다.
이 탄두의 폭발로 항공기의 동체와 날개에 수 많은 구멍 (파괴를 조사 할 때 최소 350개 발견)이 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66명과 승무원 12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희생자들은 러시아에있는 친척을 방문하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쿠흐마 대통령과 군 고위 지휘관들은 희생자들의 친척들에게 조의를 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사망한 모든 승객과 승무원 가족들에게 보상금으로 20만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고에 대한 보상금으로 총 1,500만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2003년 11월 22일 바그다드 DHL 격추 시도 사건
2003년 11월 22일 OO-DLL로 등록된 에어 버스 A300-200F 화물기가 바레인의 무하라크로 향해 바그다드에서 이륙한 직후, 왼쪽 날개에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 항공기는 모든 유압 제어 장치의 기능을 상실했는데, 이것은 승무원들이 비행기를 기동하기 위해 엔진 추력 제어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제 불능과 높은 착륙 속도와 손상된 왼쪽 날개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바그다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OO-DLL은 바퀴가 땋에 닿은지 몇초 후에 통제력 부족으로 인해 활주로를 이탈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탑승한 세 사람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2007년 1월 9일 발라드 항공기 추락 사고
2007년 1월 9일, 터키의 건설 근로자들이 탑승한 Aeriantur-M Airlines의 안토노프 An-26 한 대가 이라크의 발라드 공군 기지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습니다. 관계자들은 악천후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주장하지만, 목격자들은 비행기가 격추되는 것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라크의 이슬람 군대(IAI)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탑승한 승객 30명과 승무원 5명중 승객 1명을 제외한 34명이 사망했습니다.
2007년 3월 23일 모가디슈 트랜스 AVIAexport항공 Il-76추락 사고
Mogadishu 전투중이던 2007년 3월 23일, TransAVIAexport Airlines Ilyushin Il-76 비행기가 소말리아 Mogadishu 외곽에서 추락했습니다.
Shabelle 기자를 포함한 증인들은 비행기가 격추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벨로루시는 테러 조사를 시작했지만 소말리아는 사고가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11명의 벨로루시 민간인 탑승객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2010년대 |
2014년 7월 17일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2014년 7월 17일, 암스테르담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비행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보잉 777-200ER) 항공기가 소련제 Buk-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습니다.
어린이 80명을 포함해 승객 283명과 승무원 15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합동조사단은 이 미사일이 샤흐타르스크 라이온 전투 당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인근에서 러시아 지원 반군에 의해 작동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연루 의혹을 부인한 바 있습니다. 당시 사고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치명적인 항공 사고이자 보잉 777호와 관련된 가장 치명적인 항공 사고였습니다.
2020년대 |
2020년 1월 8일 우크라이나 국제 항공 752편
2020년 1월 8일, 우크라이나 국제 항공 752편(보잉 737-800 기종, UR-PSR)은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탑승자 176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란은 처음에 책임을 부인하다 2020년 1월 11일에서야 이 비행기가 이슬람 혁명수비대의 "민감한 장소"로 방향을 틀면서 적대적인 표적으로 오인되었을 때 의도치 않게 격추되었다고 시인했습니다.
752편에는 승무원 9명과 승객 16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란인 82명, 캐나다인 63명, 우크라이나인 11명, 스웨덴인 10 명, 아프간인 4명, 영국인과 독일인이 각각 3명이었다. 이 중 많은 캐나다인들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귀국하는 학생들이었다고 합니다. 안타깝네요.
출처 : 위키 피디아, SBS New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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