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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시사 & 뉴스

대마도가 한국땅인 증거 127

by 버들도령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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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한국땅인 증거 127

 

■ 책소개

관광지로 인기가 많아 한국인들도 즐겨 가는 대마도. 하지만 불과 70년 전만해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강력히 요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정치적 행위로 볼 수도 있으나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건 많은 근거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많은 증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을 나열하였고, 지리적 증거, 문화적 증거는 물론이고 일본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거, 중국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거, 서구열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거까지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증거를 분야별로 정리하였다.
앞부분에서는 총 127가지의 다양한 증거를 정리하였고, 뒷부분에서는 그럼 왜 대마도가 한국으로 반환되지 못했는지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부터 시작해서 이후 어떤 과정이 진행되었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자료에 기반을 두어 설명하였다.
그 외에도 대마도의 다양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고, 한국과의 많은 역사적 관계를 정리하였으며, 대마도뿐 아니라 독도를 포함해서 한반도 주변의 영토분쟁 및 일본의 만행을 총 정리하였다.
다양한 각도로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대마도의 소유권 분쟁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책이 될 것이며, 또한 거의 대부분의 주장이나 설명이 실제 존재하는 자료 및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대마도를 위한 역사책으로써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목차

제1장 대마도가 한국땅인 증거 127

1. 지리적, 생물학적, 자연적, 문화적 증거
2. 한국의 역사기록 증거
3. 일본 역사기록 증거
4. 조선땅 입증, 대마도 자체의 증거
5. 중국의 역사기록 증거
6. 서구열강의 지도·역사기록 증거

제2장 국제적 영토분쟁과 영토회담

1.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2.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이전 일본의 영토처리에 관한 조치
3. 일본의 국제법을 어기고 대마도 강점에 따른 반환의 이유

제3장 한민족과 대마도의 역사변천

1. 단국조선 시대
2. 삼국시대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5. 근세시대
6. 현대(1945년 광복 이후)

제4장 대마도에 서린 한국혼과 문화유산 및 자연관광

1. 대마도에 녹아있는 한국의 혼과 민족적 울분
2. 조선통신사 비와 아리랑 축제
3. 대마도의 자연환경과 관광

제5장 한국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본

1. 임진왜란 7년간 조선을 파괴한 일본의 침략 행위
2. 조선을 삼키기 위한 야만적 침략행위
3. 일제강점 36년간 조선의 약탈과 식민통치 정책

제6장 일본의 영토욕과 영토자료 조작

1. 영토에 먼저 눈뜬 일본(무인도를 선점하라)
2. 이승만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
3. 대통령의 1948.8.15 정부수립 후 대마도 반환주장과 속령 발표

제7장 대마도를 반환하고 피해보상하라

1.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과 역사의식
2. 대마도 반환문제 은폐를 위한 일본의 활동과 이승만 대통령의 대응
3. 일본이 대마도를 반환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4. 대한해협의 원위치를 숨기기 위한 일본의 간계
5. 대한해협을 대마해협이나 조선해협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

제8장 한국이 해결해야 할 영토문제

1. 대마도 반환문제
2. 러, 1860년 淸과 조약 후 빼앗긴 녹둔도 문제
3. 한.중.일, 대륙붕 확장 ‘삼국지’

제9장 한반도 주변의 영토분쟁

1. 러.일 북방 4개섬 분쟁
2. 일본의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
3. 센카쿠열도(Senkaku Is.) 분쟁
4. 남중국해 난사군도 분쟁
5. 중.러 국경선 분쟁

제10장 한국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는가?

1. 통일과 영토문제는 북국강병의 국내정치는 물론 외교문제, 국제정세에 정통해야 한다.

부록

1. 한민족의 대마도 관련사 요약표
2. 국제 영토반환 사례 7건
3. 일본과 대마도 관계사

참고문헌

 

■ 출판사서평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아야 할 대마도
대부분의 국민이 독도는 우리땅이라 생각하면서도 대마도는 당연히 일본땅이라 생각한다. 대마도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우리땅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70년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마도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할 만큼 대마도의 영토권 분쟁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1,000년 전에 있었던 발해의 만주 벌판은 한때 우리의 영토였다는 자부심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인 반면에 조선시대까지도 우리 땅이었다는 증거가 넘처나는 대마도에 대해서는 인식이 전무한 상황이다.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

대마도가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는 많은 고지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지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지도도 있으며 미국, 영국, 중국에서 만든 고지도도 있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만들어진 <팔도총도>에서 대마도가 조선땅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일본정부가 오가사와라 영유권분쟁시 섬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17세기에 제작된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에서도 대마도와 독도가 조선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1536년 중국에서 제작된 <황명흥지지도>, 1865년 제작된 미국 존슨의 일본지도, 1855년 영국에서 제작된 일본지도 등에서 대마도가 조선땅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대마도의 한국 영토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증거로만 보여주는 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대마도를 찾기 위해서는...

대마도가 한국 영토로 인정받아 되찾기란 매우 힘든게 사실이다. 어쩌면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대마도를 요구하다가는 독도마저 잃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건 이미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대마도는 한때 우리의 땅이었을지도 모르는 역사속의 땅이 될 것임은 명백할 것이다. 지금 당장 찾아야 할 한국의 영토이지만 지금 찾을 수 없다면 최소한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고, 언젠가는 찾아야 할 우리의 땅임을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대한민국과 대마도의 관계를 인지하고 나아가 꼭 찾아야 할 땅임을 인식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저자소개
저자 : 정홍기
남해中, 제일高 졸업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축산학과 졸업(7기)
일본문부성 초청 일본유학(1972-1976)
三星그룹 특채 ◎ 한호무역 대표
DMZ 생태계 학술조사(1991-1997)
한강발원샘 탐사 詩碑건립(1993,태백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동양철학)
건국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한국철학)
시인, 작가, 한학자, 칼럼니스트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 회원
동방대학원 대학교 교수역임
건국대학교 상허사상연구원 교수
얼학회 대표, 녹색문학 발행인

저서
· 영웅은 죽지않는다
· 한국사상사 산맥을 따라
· 사명을 가진자는 죽지않는다

출처 : yes24


미군 기밀도서, 대마도 한국 섬으로 분류

출처 : 노컷뉴스 워싱턴=CBS노컷뉴스

사진 1. 미국 JANIS 75권의 한국편 제1책 인구편에 등장하는 한국지도. 왼쪽 위편으로 '한국 인구밀집 지역'이라는 제목이 보이고, 왼쪽 아래에 제주도가 이어 오른편 아래쪽에 대마도(Tsushima)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다. 제주도 해안가로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것처럼 대마도 위 아래쪽으로 인구 밀집지역이 표시돼 있다. 출처 : 미국 국립문서보관청, NARA

일본 정부가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방문의 틈을 타 해묵은 독도 영유권 분쟁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이 터무니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의 지위를 정의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과정의 문구를 일본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부터다.(관련기사 참고)

그런데 대마도를 한국(Korea)의 섬으로 분류한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기밀 책자가 발견돼 흥미를 끌고 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9km, 일본 규슈에서 147km 떨어져 있는 면적 700㎢의 섬이다. 독도 보다 3700배나 크다.

대마도를 한국의 섬으로 분류한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해군 합동 정보 조직인 'JANIS'가 세계 곳곳에서 수행할 미군의 군사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 발간한 기밀책자 가운데 한 권이다.
 
'JANIS' 시리즈 가운데 제 75권으로, 한국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두 권으로 편철돼 있는 책의 제목은 'KOREA(Including Tsushima and Quelpart)'이다. 
 
우리말로 풀면 '한국(대마도와 제주도 포함)'이다.

사진 2. JANIS 75권 1책의 표지. 한국 영토 구역 아래쪽에 제주도와 대마도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출처 : NARA


CBS노컷뉴스가 미국 문서관리기록청(NARA)에서 확보한 제1책의 표지에는 '비등록 기밀'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서문에는 "이 연구의 목적은 우리가 한국에서 수행할지도 모를 군사 작전 계획의 바탕이 될 모든 필요한 구체적인 지형학적 정보를 하나의 출판물로 제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술돼 있다.
 
책 제목에 이미 '대마도'가 명시돼 있듯이 781페이지로 구성된 책 전반에 한국의 모든 지형 설명에 대마도가 주요하게 기술돼 있다.
 
책에는 개요, 군사 지리, 해안과 상륙지역, 기후, 항구 시설 등이 차례로 설명돼 있는데 각 항목별 지도도 매우 정교하게 인쇄돼 있다.
 

사진 3. JANIS 75권 1책에 나와 있는 지도들. 왼쪽은 해안 구획이고 오른쪽은 상륙지점이다. 두 지도 모두 대마도가 역시 명확히 표시돼 있다. (NARA)


우선 1장 개요 항목의 주요 교통 루트 편에는 남부의 중심지로 부산, 대구, 진해, 여수가 명시돼 있고, 이어 남해의 가장 큰 섬으로 대마도와 제주도가 각각 설명돼 있다.
 
인구와 정부 항목 내 군사 지리 편에는 한국 내 소수(several)의 큰 섬들과 수 백 개의 작은 도서가 소개돼 있는데 여기서도 울릉도, 대마도, 제주도를 대표적 섬으로 적시돼 있다.
 

사진 4. JANIS 75권 1책의 지도. 한국을 입체모형으로 그렸는데, 여기에도 대마도가 큼지막하게 나타나있다.(NARA)

다만 이 책 1장 42페이지 '인구와 정부' 편에는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설명도 등장한다.
 
'인구와 정부'편은 인구, 노동력, 정부조직, 정치 요인, 안전 및 공공질서가 차례로 서술돼 있고 이어 마지막으로 대마도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거기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마도는 일본 proper의 부분이며 나가사키현의 사법관할'이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proper'는 서술상 명사지만 해당 단어는 명사로는 쓰이진 않는다.
 
미국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한 미국인 자료조사원은 "문맥상 소유라는 뜻의 'property'라는 단어가 잘 못 쓰인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일본 소유'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는 이 책에서 대마도를 한국 섬으로 시종일관 기술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기술이다.
 

사진5. JANIS 75권 1책의 지도. 한국 지도를 위성 형태로 표현했다. 부산 아래 대마도가 표시돼 있다. 출처 : NARA

모순되는 설명이 같은 책에 등장하는 이유는 이 책이 여러 곳의 정보를 취합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서문에서 "1945년 3월 1일까지 워싱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집대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해군 작전참모처, 육군 정보처, 해군 정보처, 기상청, 공군 등 11곳의 정부 기관의 정보를 망라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어떤 정보는 대마도를 한국의 영토로 분류한 반면, 어떤 곳은 한국의 영토로 분류하면서도 '일본 소유의 부분'이라고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우리정부도 한 때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다.

194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일본에 요구했으며,
이어 1951년 4월에도 미국정부에 대마도 영유권을 공식 주장하기도 했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기록이 적지 않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시대 때 대마도를 비워놓는 바람에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 정부가 대마도를 일본에 편입시켰다고 보고 있다.

※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출처 : 노컷뉴스 워싱턴=CBS노컷뉴스

 

1951년 4월 27일 미국정부에 대마도 영유권을 공식 주장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분명히 포기하고 그것을 한국에 되돌려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In view of this fact the Republic of Korea request that Japan specifically renounce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the Island of Tsushima and return it to the Republic of Korea.

 

이탈리아 지리학자 J.H.Kernot. (1970년)

지리학자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이태리인 J.H.Kernot 씨가 탐험에 나서면서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뿐만 아니고 대마도가 한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대마도를 'STRAIT OF COREA' 로 표시해 '한국해협안에 대마도가 있다'

 

김대건 신부. 출처 : 당진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한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 사본. 라틴어로 동해라는 뜻의 &lsquo;MARE ORIENTALE&rsquo;가 표기돼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19세기 중반 조선의 대표적인 조선전도를 꼽으라면 단연 ‘해좌전도海左全圖’

19세기 중반 조선의 대표적인 조선전도를 꼽으라면 단연 ‘해좌전도海左全圖’이다. 전서체의 지도제목 ‘해좌海左’는 신라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지역을 지칭하던 용어로 이 지도에서는 ‘조선’을 가리킨다. 옛날부터 중국에서 부르는 우리나라의 지칭은 ‘해海’자 계열의 해동海東, 해향海鄕, 해방海邦 등과 ‘동東’자 계열의 동국東國, 동해東海, 동역東域 등이 있고, 이밖에 삼한三韓, 청구靑丘, 접해鰈海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lsquo;해좌전도 海左全圖&rsquo;

지도는 목판채색으로 제작되었고, 크기는 가로 55.4 cm, 세로 97.8cm의 낱장지도이다. 지도의 크기가 지금의 국전지(A1)만 해 목판은 세로 4등분으로 나눠 판각했다.

대마도對馬島 밑에는 대마도와 초량왜관草梁倭館에 관한 기록이 있다.

 

 

 


현존 최고(最古) 한글지도 '한글조선전도' 부산시문화재 지정

국립해양박물관 소장…단군, 기자 등 옛 나라명도 표기"

한글조선전도&nbsp;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국립해양박물관은 소장자료인 '한글조선전도'(한글朝鮮全圖)가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됐다고 10일 밝혔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는 한지에 수묵과 담채로 지리적 형태를 묘사하고 한글로 지명을 적었다.

크기는 가로 63㎝, 세로 103㎝이다.

 
한글조선전도의 서울 부근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2013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개리 레드야드 교수가 국내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고, 개인 소장자가 프랑스에서 입수해 해양박물관에 매도했다.

제작 연대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한글 지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박물관은 밝혔다.

지형의 수맥과 산맥을 명칭과 함께 묘사하고 그 지세에 원형으로 도장을 찍어 334관의 주부군현을 표기했다.

지도 여백에는 서울과의 거리, 중국과의 일정, 조선의 동서 거리와 남북 거리, 도별 군현수를 부기했다.

실학자들에 의해 알려진 우리나라의 옛 국명도 적혀 있다.

한글조선전도의 부산 부근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평양 부근 단군(조선)·기자(조선), 함흥 인근 현도, 강릉 인근의 임둔 등 한군현을 표기했다.

춘천에는 맥국, 강릉에는 예국, 영변 인근에는 행인국 등의 옛 나라 이름들이 표시돼 있다.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표기돼 있어, 지도 제작 당시 한국인의 생활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출처 : 동아일보


1832년 하야시의 삼국통람도설 서양에 소개되다

1832년에 하야시의 삼국통람도설이 불어로 번역되어 서양세계에 소개되기에 이르지만, 한반도에 관한 사항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습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1793)는 1785년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을 저술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삼국(三國)이라 함은 조선(朝鮮), 유구(流球), 하이(蝦夷, 혹까이도)를 말합니다. 그는 1767년부터 식산흥업(殖産興業)과 학제개혁(學制改革)을 주장한 선각자(先覺者)중의 한 사람으로, 1775년 나가사끼에 가서 화란인(和蘭人)에게서 서양의 지리적 지식을 습득하고,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하여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국병담(海國兵談)을 저술하여 해방체제(海防體制)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가사끼에 머물고 있던 서양인 지리학자로부터 지도제작기법을 배우고, 그 틀에다 그가 수집한 동양적 지리지식을 접목시켰습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하자는 것은 영국이나 화란 프랑스 등의 여러 나라에서 협력하는 정책이었으며, 그들은 이것을 일본의 식자(識者)들에게도 알려서 협력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본문(本文)에서 조선은 북위 35도에서 43도에 위치하며, 부산포(釜山浦)가 36도, 왕도(王都)가 38도에 위치한다고 했습니다. 조선팔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언문(諺文)이라 하는 일자일음(一字一音)인 한글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에는 위도만이 1도 간격으로 선을 그려놓고 있는데, 북위 39도의 강능 동쪽에 큰 섬을 그려놓고 이를 鬱陵嶋 千山國(울릉도 천산국)이라 하였습니다. 크기가 너무 크고, 연안에 가깝지만 이는 울릉도에 해당하는 섬입니다. 嶋자는 島와 같은 의미입니다.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서는 북위 38도, 경도 155도 20분에 섬을 이름 없이 그려 놓고, 또 북위 38도 30분, 경도 159도에 다께시마(竹嶋)를 위치시키고 조선(朝鮮)에 속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그 당시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다께시마라 했습니다. 이 지도에는 부정확하나마 경도가 나타나 있는데 어디를 기점으로 한 것인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아마도 복도(福島)를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한반도 동해안 가까이 있는 이름 없는 섬은 조선팔도지도를 보면 울릉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竹嶋 즉 竹島 역시 울릉도인데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죽도에 해당하는 섬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하야시(林子平)의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은 1832년 Julius Heinrich Klaproth에 의하여 불어로 번역되어서 서양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지도도 알려졌습니다. 조선팔도지도(Carte des Huit Provinces du TCHAO SIAN)에서는 북위 39도의 Kiang Ling(강릉) 동쪽 바다에 있는 큰 섬을 “Thsian Chan Koue ou Tyu Ling Tao” 라고 했습니다(사진 1). 삼국접양지도(Carte des TROIS ROYAUMES)에서는 북위 38도 30분, 경도 160도에 있는 섬을 Takenosima 라 하고 “a la Corée" 라는 설명이 있습니다(사진 2). 일본의 남쪽 바다에 구로세가와(黑瀨川)라는 해류(海流)를 표시해 놓기도 했습니다(사진 3). 하야시(林子平)의 동북아시아지도는 비록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1785년 당시에 일본에서는 서양의 지리적 지식이 상당히 보급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서양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이 지도가 1832년에는 서양에 다시 소개되었는데, 서양에서는 이것이 일본 지도로 알려집니다.

수당(水堂) 한상복(韓相復)
한수당자연환경연구원 원장
2012년 3월 30일  

사진 1. 1832년 Klaproth가 불어로 번역한 하야시의 삼국통람도설 속의 조선지도.

  

사진 2. 1832년 Klaproth가 불어로 번역한 삼국통람도설 속의 삼국접양지도에 있는 한반도 주변(부분).

 

사진 3. 1832년 Klaproth가 불어로 번역한 삼국통람도설 속의 삼국접양지도.

[출처] 1832년 하야시의 삼국통람도설 서양에 소개되다|작성자 한수당


개정신경조선전도 (改訂新鐫朝鮮全圖)

개정신경조선전도(改訂新鐫 朝鮮全圖) 佐田白茅·岸田昑香·松田敦朝, 1875年, 41.6×48.5cm.

佐田白茅가 일찍이 조선에 출장갔을 때 그 나라 全圖를 베껴와 原圖로 하고 각 지도를 대조하여 제작했다는 설명이 들어 있는 이 지도는 1875년 10월에 간행되었다.

그는 明治維新을 조선 정부에 알리고, 새로운 국교를 요구하기 위하여 森子平의 지도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은 듯 하다. 林의 영향을 받은 지도들이 흔히 북쪽을 우측으로, 남쪽을 좌측으로 배치하여 동해를 아래쪽에 그린 데 대하여 여기서는 반대로 남쪽을 우측으로 하고 북쪽을 좌측으로 그려 동해가 위로 가게 되었다. 동해가 밑으로 내려오는 지도를 일본 쪽에서 바라본 지도라는 설명은 옳지 않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남북이 좌우로 배치되는 것은 가로(橫)식 지도를 만드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林子平을 따른 지도들이 위도선만 그리는 데 비하여 여기에는 경도선도 그려져 있다.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東京을 기준으로 하여 조선의 경도는 東經 아닌 西經에 해당하는데, 한반도를 대륙에서 남쪽에서 뻗은 것으로 보지 않고 林子平처럼 동남쪽으로 뻗은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經緯線이 엉뚱하게 되고 말았다. 銅版으로 정교하게 인쇄한 이 지도는 조선의 산천과 주요 고을들을 그리고 있는데, 산악들은 羽毛로 표현하여 서북지역과 강원·경북지방에 집중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각 고을에 이르는 거리가 기록되어 있으며, 각 도의 官數를 적어 놓았다.

이 시대의 많은 조선지도들이 그러하듯 임진왜란 당시의 싸움터에 간단한 설명을 가했다. 두 군데 그려 넣은 方位꽃(컴퍼스 로즈) 중에서 서산반도 밑에 그려 놓은 것은 두만강구를 북쪽으로 가리키고 있다.

-영남대박물관 소장


 

16세기 중종 때 제작된 관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八道總圖)’

1530년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은
우리나라 전도 인본(印本)으로 간행된 조선전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첫머리 '팔도총도(八道總圖)'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해동필도봉화산악'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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