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지구를 지키죠”…‘쓰담’하면서 칼로리 태우는 ‘플로깅’
“어렵지 않게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어요. 두 손만으로 내가 자주 다니는 공간을 좀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 뿌듯합니다.”(박민선 씨·30·여)
일회용 장갑을 낀 손으로 쓰레기봉투를 쥐고 바람을 가른다. 쓰레기를 발견하면 달리기를 멈추고 허리를 숙인다. 봉투가 묵직해질수록 호흡도 가빠진다. 목적지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자 말끔해진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한가득 모은 쓰레기를 ‘인증샷’으로 남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산책 또는 달리기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 활동, ’플로깅(plogging)‘이 인기를 얻고 있다. 친환경과 건강 이슈에 민감한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중심에 있다. 플로깅을 통해 ’운동‘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모습이다.
SNS에는 플로깅 활동을 인증하는 게시글이 줄을 잇는다. 주위의 자발적 참여를 장려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는 욕구로 풀이된다.
플로깅·줍깅·쓰담달리기…모두 같은 이름입니다
‘플로깅(plogging)’은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이삭 등을 줍다)’와 영어 ‘조깅(jogging·달리는 운동)’의 합성어다. 2016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환경 운동이다.
지난 2019년 국립국어원은 플로깅을 대체할 우리말 표현으로 ‘쓰담달리기’를 선정했다.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달리는 활동을 가리킨다. ‘줍다’와 ‘조깅’을 합쳐 ‘줍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달리기 편한 옷을 입고 쓰레기봉투와 일회용 장갑을 챙기면 끝이다. 기다란 집게는 손이 닿지 않는 쓰레기를 줍는 데 도움을 준다. 스마트폰도 빠질 수 없다. 달린 거리를 측정하고 깨끗해진 거리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쓰레기가 버려진 달릴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플로깅 무대’로 적합하다. 집과 가까운 공원·산책로·등산로뿐 아니라 휴가를 떠난 유명 관광지에서 플로깅을 즐기기도 한다.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시도다.
의무감 아닌 자율 참여 기반한 시민들 놀이 문화
이같은 플로깅은 자발적 놀이 문화에 가깝다. 달리기라는 취미 활동과 환경 보호 운동이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다.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인증 사진들은 ‘릴레이’처럼 놀이 참여를 유도한다.
지난 6월 5일 환경의 날 한양도성길에서 플로깅에 나선 박민선 씨는 “친구와 함께 ‘누가 먼저 봉투를 다 채우나, 누가 더 큰 쓰레기를 발견하나’ 경쟁하며 즐겁게 플로깅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씨는 이날 경험을 정리해 개인 블로그에 플로깅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플로깅은 조직화된 캠페인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자율적 놀이에 가깝다”며 “‘운동하며 쓰레기도 같이 줍자’는 식으로 취미 활동에 여유와 재미가 깃든 형태”라고 설명했다.
플로깅이 인기를 끌며 ESG 경영이 화두인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올해 6월 이후 △SK이노베이션 ‘산해진미(山海眞美) 플로깅’ △한빛소프트 ‘어스앤런 플로깅(Earth & Run Plogging) 챌린지’ △KB손해보험 ‘KB플로깅 캠페인’ 등이 열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4월 직접 플로깅을 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지자체는 조례 제정으로 지원에 나섰다.
울산시의회 이미영(행정자치위원회) 의원은 지난 5일 간담회를 열고 플로깅 활성화 방안 마련 및 관련 조례 제정을 위해 의견을 수렴했다. 이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조례안에는 △플로깅 활성화 시책과 지원 △플로깅데이 운영 △참여행사 및 교육프로그램 개발 보급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환경 ‘일석이조’ 효과…즉각 확인하는 결과도 뿌듯
플로깅의 가장 큰 매력은 땀을 흘리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동 효과는 단순 달리기 못지않다. 달리는 중간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는 자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활동으로 몸과 마음 모두를 만족시키는 셈이다.
대학생 박소정(24·여)씨는 지난 2월 ‘줍깅은 처음이라’는 봉사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 플로깅을 떠올렸다.
박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이전보다 운동량은 줄고 플라스틱 소비량은 늘었다”며 “플로깅은 이러한 상황 속 건강도 챙기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는 ‘일석이조’ 활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변화를 바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스스로 목표했던 12회 플로깅을 지난 10일 마친 임세원(24·여)씨는 “플로깅은 먼 미래가 아닌 활동을 마친 즉시 깨끗해진 거리를 볼 수 있어 뿌듯함을 준다”며 “이처럼 즉각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환경 보호 활동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박민선 씨 또한 “집 앞 가까운 공원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며 “여행이나 등산·캠핑을 떠나서도 가능한 활동”이라며 공간에 제약이 없음을 강조했다.
플로깅을 통해 일상에서도 환경을 보호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플로깅을 시작한 뒤 기후 위기에 관심이 생겼다는 한 20대 여성은 “소비하고 버리는 모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며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스스로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한 행동”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공공 쓰레기통 부족·회의적 시선 개선 필요”
한편 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은 플로깅을 진행하는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임씨는 “플로깅을 하며 공공 쓰레기통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거리에서 쓰레기를 올바르게 버릴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씨는 “생활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으려는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공공 쓰레기통이 없으니)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식으로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플로깅으로 모은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작업을 생략해선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소정 씨는 “번거롭더라도 주운 쓰레기를 잘 분리해 버리는 게 플로깅의 마무리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대중의 회의적인 시선은 플로깅 도전을 막는 걸림돌이다.
임씨는 “어떤 행인은 플로깅하는 모습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징계를 받아서 사회 봉사를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며 “이런 시선이 민망해 일부러 늦은 밤 플로깅을 나선 적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플로깅 확산을 위해 놀이 문화라는 본질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수열 소장은 “도덕적 의무감을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며 “소모임형성을 중심으로 놀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출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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