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란?
공동육아란 ‘탁아’ 혹은 ‘보육’으로 부르는 제도적 집단 양육방식을 말합니다. 탁아, 보육, 공동육아는 각각 다른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말로서 서로 다른 세계관, 인간관에 바탕을 둔 각각의 지향점이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입니다.
‘탁아’는 일본에서 custodial child - care를 변역하여 만든 일본식 한자 조어로 어른들과 사회의 필요에 따라 ‘아이를 맡긴다’는 뜻입니다. 이는 ‘아이를 지키고 돌본다’는 custodial의 의미보다 어른중심의 기능론적 의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여성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의미로 근대 일본국가주의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패전 후 일본은 ‘탁아’ 대신 ‘보육’ ‘탁아소’ 대신 ‘보육원’으로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1990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으로 살피고 기른다는 ‘보육’의 개념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영유아를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보호하기 어렵게 된 사회와 삶의 변화가 낳은 결과이나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보육을 ‘보호와 교육’으로 풀어써서 ‘교육’을 강조하는 의견에는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취학전 아동에 대한 ‘교육’은 ‘머리가 좋아지는’ ‘남보다 빨리하는’ 조기교육이 되기도 하고, 학교 같은 공식적 조직체의 구성과 표준적 교육시설, 표준적 교과과정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이기적 경쟁과 기계론적 세계관을 더 효율적으로 더 어린 연령층에게 내면화시키는 새로운 반생태적인 교육체제의 확산이란 결과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공동육아는 말 그대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란 뜻입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줄 때의 ‘아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뜻의 ‘아이들’입니다. 여기서 ‘함께’란 나뿐 아니라 이웃, 지역사회, 국가 모두가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함께 책임지고 키워보자는 뜻입니다. 즉 육아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변화와 동시에, 육아를 통한 어른들의 생활변화 그리고 크게는 사회문화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형제자매가 적은 요즘 현실에서 아이가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부모들도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육아는 ‘내 아이 바라보기’ 가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기’입니다.
공동육아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4년이지만, 그 배경에는 1970년대 말부터 빈민 탁아운동을 해 온 대학생 집단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과 ‘공동육아연구회’라는 모체가 있었습니다.
1978년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1980년 ‘난곡 해송 유아원’의 설립하였습니다. 유아원을 운영하면서 교육현장에 대한 자율적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이 교육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지와 노력과 동시에 교육 내부의 장기적 안목과 자기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1984년에 설립한 ‘창신동 해송 아기둥지’는 자연과 일과 놀이가 결합된 생활을 강조하는 교육관에서 출발하여, 교육내용 구성에 있어 교사와 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보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해송아기둥지는 현재 ‘해송 지역아동센터’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던 때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은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으로 재발족되었습니다.
1991년 계층 차별적인 보육정책과 사회적 육아의 영리화 ? 관료화의 문제가 근간을 이루는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자 걱정모임은 ‘공동육아연구회’로 개칭하고 직접 구체적인 공동육아 터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방향은 계층 통합을 실현하는 보편적인 보육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육아환경의 기준을 높이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며, 부모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동육아 터전을 만들고, 서로의 기대와 가치관을 나누고 절충하며, 함께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이 고안되었고, 그 결과 1994년 신촌 우리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공동육아를 만들 때 사람들은 교육의 지향은 ‘생활’로 녹아들어 표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생활리듬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도하는 곳, 자연이나 사람과 만나면서 배우는 곳, 획일적이지 않고 모든 것을 통합하는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성별 연령 장애 계층 인종 따위의 차별을 넘어 모두가 함께 사는 삶을 배우는 곳, 인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자연 속에 건강한 인간이 되는 생활문화를 만들어가는 곳, 그것이 당시의 교육 방침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공동육아연구회’는 1996년 ‘(사)공동육아연구원’으로 정식 발족하였고, 2001년 10월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보육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을 공동체적으로 키우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공동육아는 아동의 성장을 돕는 일을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는 물론 육아에 관련된 각종 사회조직과 집단이 육아의 책임 담당자가 되어 우리 사회의 미래 성원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양육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로 공동육아 개념의 핵심입니다.
여기에서의 ‘공동’이란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공동이고, ‘협동’도 기계적인 분업이 아닌 ‘참여적’ 협동을 뜻합니다. 즉 가족과 사회가 공동으로 육아의 책임을 지며, 양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미래 사회의 주인공들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공동육아운동은 육아를 통해 ‘우리’가 ‘함께’ 될 수 있는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며, 바로 오늘부터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에 그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한 ‘운동’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 공동체적 삶의 영역을 이 사회 안에서 넓혀 나가는 일입니다.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과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부모들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내면화하여 장기적이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성장과 함께 본질적인 사회문화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바라며, 어린아이들의 바람직한 대안적 사회화와 어른들의 재사회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운동입니다.
둘,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며 사람과 자연과 함께 사는 데에 익숙한 어린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운동임과 동시에 그들이 체험하고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인간관계, 삶의 방식으로부터 기성세대(부모, 교사)들이 배워서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을 찾아 바로잡아 나가고자하는 운동입니다.
셋, 아이들이 경험한 공동체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보완해 주고 지지하는 일입니다.
공동육아 현장에서 내면화된 자발성과 창의성, 그리고 공동체적 생활습관으로 어린이들 스스로가 제도교육의 어떠한 틀 속에서도 끗끗이 자라날 수 있도록, 사회적 육아과정에 참여와 개입을 경험한 부모들이 연대하여 지원하고, 학교제도의 굳은 관행에 도전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입니다.
넷, 사회전체가 공동체적 원칙에 의해 대응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 변화를 유도하는 일입니다.
현재 무한경쟁체제와 그에 따른 불평등 구조, 즉 소득, 학력, 성, 지역, 장애 정도에 따른 모든 차별 요소를 육아의 영역에서부터 극복해 나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입니다.
다섯, 우리 아이들과 미래를 위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사회문화적환경변화를 모색하는 일입니다.
더 이상의 자연파괴를 막고, 우리들의 건강한 삶의 환경을 지키는 일, 즉 물과 공기와 먹걸이의 안정성을 지키는 일과 나이, 계층, 학력, 성, 장애 정도, 민족과 지역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운동입니다.
공동육아운동의 핵심과제는 우리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며, 육아를 통해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변화하고, 함께 힘을 합쳐 세상을 바꿔 나가는 운동입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겐 미래도 희망도 없다. 골목마다 넘치던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어느 새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겨워 부모 되기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여성의 참여를 요구하고 여성 역시 가정에만 머물기를 거부하고 사회참여를 의무와 권리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아이는 누가 키울 것인가.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여성에게 사회참여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보육도 떠맡기고 모른 체 했다.
부모들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데를 찾아 여기저기 뒤지지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잘 키워 주기를 바라기는커녕 그냥 안전하게 맡아만 줄 곳조차도 찾기 어렵다. 혹 있다 해도 어느 곳은 너무 비싸고 어느 곳은 너무 멀고 어느 곳은 너무 열악하다. 결국 스스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부모도 생기지만 그 보다 더 많은 부모들은 불안을 안은 채 아이들을 미흡한 보육시설에 맡겨야 한다.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보육교사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이다. 열악한 시설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아가며 장시간 많은 아이들을 돌보노라면 몸도 마음도 지레 지쳐 버리기 일쑤이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 되려면 부모와 교사와 국가가 한 마음이 되어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으로, 키워 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여건에서 이러한 보육을 바란다는 건 어림없는 욕심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불가능한 과제이기만 할까? 지금 당장 우리 사회와 국가가 힘을 쏟는다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모든 아이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다름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보육을 위하여 우리, 어린이와 교사와 부모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보육권리 선언(어린이)
날마다 햇빛과 바람, 물, 흙 속에서 놀 수 있게 해 주세요.
매일 나를 안아주고, 나와 눈 맞추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친구(선생님)들을 충분히 주세요.
따뜻한 간식과 건강한 먹을거리를 주세요.
장애를 가진 친구들, 조금 다른 얼굴, 다른 말, 다른 나이의 친구들과도 함께 놀 수 있게 해 주세요.
꽉 짜인 시간표로 움직일 때마다 줄 세우지 말아 주세요.
여자와 남자를 옷과 놀이와 말로 구별하지 말아주세요.
모두가 똑같은 옷과 가방과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게 해주세요.
글자와 숫자와 외국말을 너무 일찍 익히게 하지 말아 주세요.
화난 얼굴, 노여운 목소리, 무서운 매로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
학교가 끝난 후에도 우리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 보육권리 선언(교사)
안정된 보육시설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한 교사가 돌보는 아이들의 수를 줄여 주세요.
교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재교육의 기회를 넓혀주세요.
교사들의 적절한 근무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해주세요.
교사들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부모들과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보육권리 선언(부모)
안심하고 아이를 보낼 수 있게 좋은 보육시설을 집에서 가까운 곳에 많이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과 행복을 지원하는 보육 프로그램이 되도록 해주세요.
바람직한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부모와 사회가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교사들과 늘 상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아보육, 야간보육, 장애통합보육 같은 다양한 보육시설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뽀로로 노래 가사 모음 (뽀롱뽀롱 뽀로로, 뽀로로와 노래해요, 일어날 시간이야, etc) (1) | 2022.10.21 |
---|---|
세시 절기 이야기 -24절기 (0) | 2022.03.23 |
키 크는 습관 - 필수 육아 정보 (0) | 2022.03.01 |
키 클리닉 - 자주묻는 질문 (첨부 : 연령별 키) (0) | 2022.03.01 |
비접촉 스캔 체온계 라이언 (카카오프렌즈샵) (0) | 2020.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