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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주화

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 이만오천원 - 세종대왕

by 버들도령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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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 이만오천원 - 세종대왕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
  25,000원화 20,000원화 10,000원화 5,000원화 2,500원화 1,000원화
발행량(장) 325 382 435 670 1,750 1,500
소재 Gold (90%),
Cu(10%)
Gold (90%),
Cu(10%)
Gold (90%),
Cu(10%)
Gold (90%),
Cu(10%)
Gold (90%),
Cu(10%)
Gold (90%),
Cu(10%)
도안 세종대왕 초상/국장 신라금관/국장 박정희 초상/대통령 문장 거북선/국장 신라선덕여왕/국장 남대문/국장
지름 60.00㎜ 55.00㎜ 40.00㎜ 32.00㎜ 26.00㎜ 18.00㎜
무게 96.80g 77.44g 38.72g 19.36g 9.68g 3.87g
발행일 1970년 8월 15일
제조처 독일 주화제조업체(이탈리아 이탈캄비오社 제조대행)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 이만오천원 - 세종대왕

 

앞면 - 세종대왕상
뒷면 - 국장

화폐명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 이만오천원
발행 1970.08.15
소재 Gold (90%),
Cu(10%)
지름 60.00㎜
무게 96.80g
주도안 소재 세종대왕 초상(앞면), 국장(뒷면)
비고
  •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기념 주화로 금화 6종과 은화 6종을 발행하였다. 독일의 주화제조업체(이탈리아의 이탈캄비오사(社) 제조대행)에서 제조하였는데 전면에는 세종대왕과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뒷면에는 국장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 이 기념주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로 볼 수 있는데, 북한보다 먼저 금, 은 주화를 갖고 싶어 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기념주화의 제조를 한 독일의 주화 제조업체가 제조를 맡고 당시 세계적인 판매망을 갖고 있던 이탈리아의 이탈캄비오사가 판매를 대행하였다.
  • 우리나라는 화폐제조비를 들이지 않고 최초의 기념주화를 역사에 남긴 것이다. 대통령 특명에 의해 기념주화 발행사실이 엄격히 비밀에 부쳐졌음은 물론이고 기념주화발행에 대한 정부 승인과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절차가 발행 후에 이뤄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더욱이 이탈캄비오사가 판매대금의 20%를 한국정부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외에서만 판매(발행) 하는 것으로 발행 방식이 결정돼 국내에 있는 우리 국민들은 기념주화를 구경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 영릉(英陵, 세종대왕)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해시계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였으며 아악을 정리하고 북방의 야인을 정벌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으며 대마도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학문을 충정하여 학자를 양성하고 활자를 개량하여 용비어천가, 농사직설등 수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왕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능의 하나로서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두 개의 혼유석이 있고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능의 정중앙에 팔각의 장명등이 있으며 주위에 석호·석양·석마·문인석·무인석·망주석을 배치했고 능뒤에는 나즈막한 곡담을 둘렀다. 능밑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과 제사때 음식을 준비하던 수라간, 능을 지키는 관리가 살던 수복방이 있고 정자각 동편에 능비와 비을 세웠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해 놓았으며 세종전에는 대왕의 업적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학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재지 : 능서면 영릉로 269-50
문의처 : 031-885-3123
홈페이지 http://sejong.cha.go.kr

관람시간

2월 ~ 5월, 9월 ~ 10월 6월 ~ 8월 11월 ~ 1월
매표시간 관람시간 매표시간 관람시간 매표시간 관람시간
09:00~17:00 09:00~18:00 09:00~17:30 09:00~18:30 09:00~16:30 09:00~17:30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 무료개방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경기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901-3. 세종대왕릉

 


세종대왕 때 금속형 블록 발견

서울 종로의 인사동에서 조선 초기 금속형 블록 1,600여 점이 출토됐다. (차)


문화재청에 따르면 수도문화재연구소는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초기 금속활자 1600여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오경택 수도문화재연구소 소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글과 한자 금속활자 블록 1600여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물은 15세기에서 16세기로 추정됩니다.”

오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조선 세종(1397~1450) 시대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전문가들이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땅속에 묻힌 솥에서 금속형 블록이 다른 금속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출토된 유물은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되어 보존 및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종(1397~1450)이 쓴 새 한글을 설명하는 문서인 훈민정음이 작성된 당시의 서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5세기에만 쓰던 동국정운체의 철자가 활자판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동국 정한식 철자를 사용한 점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블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금속형 블록은 1455년 세조 때 만들어진 것이다.

산발적인 두 글자를 연결하는 접속사를 각인하는 데 사용된 연주 금속형 블록도 10여 점 발견됐다.

조판과 함께 물시계의 시각 눈금 부분인 주전의 파편으로 보이는 구리 유물도 솥 안에 있었다. 구리 조각은 1438년 또는 1536년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 The Korea Herald. 2021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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