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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우표

기념우표 - 한국의 옛 건축(서원) 기념 우표

by 버들도령 202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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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우표 - 한국의 옛 건축(서원) 기념 우표

 

우표명칭 한국의 옛 건축(서원)
종 수 8
발행일 2021. 3. 11.
발행량 880,000장
디자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달성 도동서원 환주문,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우표명칭 한국의 옛 건축(서원)
우표번호 3481, 3482, 3483, 3484, 3485, 3486, 3487, 3488
종수 8
발행량 880,000
디자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달성 도동서원 환주문,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인쇄 및 색수 평판 / 4도 / 무광은박 / 투명필름
전지구성 4 × 4
디자이너 신재용
발행일 2021. 2. 26.
액면가격 380원
우표크기 40 × 26
인면 38.5 × 24.5
천공 13 ×13
용지 평판원지
인쇄처 POSA(Cartor社)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달성 도동서원 환주문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달성 도동서원 환주문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조선 시대 각 지방의 사림(士林)이 세운 사설 교육기관이자 성리학 사상의 본거지가 되었던 서원(書院)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사이에 건립된 각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 9곳이 포함되었고, 우정사업본부는 이 중 4개의 서원을 소재로 “한국의 옛 건축(서원)”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서애 류성룡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병산서원’은 경북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며 자리하고 있습니다. 류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 등에서 명성을 얻었고,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에 공로가 큰 인물로 평가됩니다. 병산서원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만인소 등 공론장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서원의 앞에 놓인 만대루는 길이 7칸, 폭 2칸의 긴 개방형 건물로, 강 건너에 있는 병산(屛山)의 풍경을 담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최근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필암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인 하서 김인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1579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1624년(인조 24)에 복원되었고, 1662년(현종 3)에 임금이 직접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내려보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지키고 있습니다. 1871년에는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특히 호남 지역의 많은 서원들이 철거되었고, 필암서원은 호남지역에 남은 서원 중 하나입니다. 전면에 있는 확연루는 평지에 세운 2층 누각으로, 서원 누각에서 보기 드물게 실내 단청이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도동서원’은 1568년에 비슬산 산기슭에 세워져 ‘쌍계서원’으로 불렸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5년(선조 38) 대구 달성군에 재건되었습니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이 서원은 1610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을 받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사지에 축조된 서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도동서원은 건축물별로 여러 단을 조성하여 외부 자연경관을 시각적으로 잘 수용하고, 건물 간 위계가 분명한 것이 특징입니다. 학문을 닦고 배우던 강학 공간의 진입 문은 작고 낮게 만들어, 드나드는 사람이 자세를 낮추며 자연스레 공경을 나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도동서원의 중정당 · 사당 · 담장 또한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각 단을 이루는 석축과 강당의 기단, 그리고 계단을 이루는 돌을 다듬은 솜씨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도동서원의 자랑거리입니다.

‘돈암서원’은 17세기 조선의 예학 연구를 선도한 사계 김장생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1634년(인조 12)에 건립한 서원입니다. 원래는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을 연구하고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썼던 근거지입니다. 이후 김장생의 제자들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웠고,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원 좌측에 따로 세운 ‘응도당(보물 제1569호)’은 길이 5칸, 폭 3칸의 강당 건물로, 넓은 마루와 뒤쪽의 방의 구성, 그리고 측면에 작은 눈썹지붕을 붙인 오래된 강당 형식을 잘 갖추고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한국의 옛 건축(서원)” 우표는 전지와 시트 두 종류로 발행되었습니다. 우표 변지에는 도산서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시트에는 사대부 화가였던 겸재 정선이 퇴계 이황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부채에 그린 `도산서원’ 그림입니다. 이번에 발행된 기념우표를 감상하며 교육 공간이자 유교 500년의 문화유산인 한국의 서원을 직접 찾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 우체국 홈페이지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안동 병산서원 전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서원은 어딜까. 한번 다녀온 사람은 기억에 지울 수 없는 곳이 바로 안동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이다. 서원 앞으로 하얀 모래톱과 낙동강이 흐르고, 그 너머 병풍같이 둘러쳐진 병산이 자리하는 곳. 여름날 배롱나무에 꽃이 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거기에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 최고의 누각이라고 할 수 있는 만대루(晩對樓)가 병산서원을 더욱 빛내준다.

안동의 병산서원은 『징비록』으로 알려진 서애 류성룡(柳成龍 ; 1542~1607)을 모신 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류성룡이 세운 풍악서당과 류성룡이 죽은 후 1613년(광해군 5) 그를 향사하는 존덕사를 세워 서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1863년(철종 14)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은 후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병산서원은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서원 구조이다. 그러면서도 병산서원에 대한 예찬은 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한국 건축사의 백미’
‘건축가들의 영원한 텍스트’
‘자연과 하나 되는 이상적 공간’

정말 그렇다. ‘외삼문인 복례문 – 누각인 만대루 – 기숙사인 동재·서재 – 강당인 입교당 – 내삼문 – 사당인 존덕사’가 차례로 배치된 전형적인 서원 구조. 그럼에도 각 건물마다 들어선 자리가 절묘하다. 그 절정에 만대루가 있다. 유생들을 가르치는 입교당에서 바라보면 좌우에 동재·서재가 있고, 정면에 7칸이나 되는 만대루가 가로막고 있어 답답할 듯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입교당에서 만대루 너머를 바라보면 마치 7폭 병풍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만대루에서 본 입교당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2층 누각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에 2층 누각의 팔작지붕이다. 2층을 떠받치고 있는 다듬지 않은 주춧돌과 우람한 18개의 기둥 모습들이 다양하다. 정말 자연스럽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도 예사롭지 않다. 시야를 거슬리지 않게 한쪽 구석에 세워진 나무 계단은 도끼질 몇 번 한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역시 절정은 만대루에 올라 바라보는 모습이다. 요즘은 출입을 못하게 해서 아쉽기만 하다. 사방으로 탁 트인 만대루에 오르면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강 건너의 병산 – 낙동강 – 하얀 모래톱 – 서원 주위의 배롱나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경이다. 거기에 시원스런 바람까지 불어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만대루(晩對樓)’는 두보의 시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저녁 무렵 보름달이 뜬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정말 병산서원, 그 중에서도 만대루는 우리나라 건축의 백미이다.

입교당에서 본 만대루와 병산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출처 : 한국문화원 연합회

 

한국의 옛 건축(서원) - 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확연루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명칭변경: 필암서원 → 장성 필암서원(2011.07.28)

<세계유산등재: 한국의 서원 (2019. 7. 6.)>

ㅇ 유산지역: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ㅇ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됨.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있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임.  ※세계유산적 가치(탁월한 보편적기준/OUV) 보유(기준ⅲ)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번지. 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확연루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도동서원 → 달성 도동서원(2011.07.28 고시)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한국의 옛 건축(서원) -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선현께 제사지내고 학문을 이어받고자 설립한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으로 인조 12년(1634)에 세웠다. 김장생(1548∼1631)을 중심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없어지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응도당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 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겼다. 건물을 옮길 때 기와에 적힌 기록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건물임을 알게되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 성격 중 강당으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옛 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 건물로 강당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72번지. 돈암서원 응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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