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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우표

기념우표 - 읍성(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기념우표

by 버들도령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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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기념우표

우표명칭 읍성
종 수 3
발행일 2021. 8.  4.
발행량 672,000(전지 42,000장)
디자인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우표명칭 읍성
우표번호 3528 ~ 3530
종수 3
발행량 672,000(전지 42,000장)
디자인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인쇄 및 색수 평판 / 4도 / 적박
전지구성 3 × 5
디자이너 김미화
발행일 2021. 8. 4.
액면가격 380원
우표크기 48 × 22.5
인면 48 × 22.5
천공 13¼ × 13
용지 평판원지
인쇄처 POSA(카토社)

읍성 - 고창읍성

 

읍성 - 서산 해미읍성

 

읍성 - 순천 낙안읍성

 

궁궐, 서원, 누각 등 조선 시대의 다양한 건축물은 오늘날 후손들에게도 공간이 전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읍성’은 지방 고을의 주민과 행정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시설로서, 성벽과 읍성 내의 건축물에는 우리 조상들의 오랜 삶과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보존과 복원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 3대 읍성을 소재로 기념 우표를 발행합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고창읍성은 고창의 옛 이름인 ‘모량부리’에서 유래하여 ‘모양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윤달에 부녀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벽 위를 도는 답성놀이로 유명하며,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축 기법과 돌에 남아있는 각자 등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말 계유년에 전라도 각지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기슭의 경사지에 높이 4~6m의 성벽을 1,684m의 길이로 쌓았으며, 동·서·북의 3문과 옹성, 수구문 2곳 등 방어 시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순천 낙안읍성은 평지성으로 조선 초기부터 쌓기 시작하여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쌓아 완성하였습니다.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의 성벽은 둘레 1,406m, 높이 3~5m이며, 둥근 성벽의 내부는 T자형의 도로로 구획된 계획도시입니다. 동문과 서문을 잇는 간선도로 북쪽 구역은 객사와 관아 등이 있는 공공 영역이고, 그 아래편 남쪽 구역은 백성이 생활하는 구역입니다. 성벽을 따라서 3개의 성문과 치성과 옹성, 해자 등이 남아있고, 읍성 안에는 객사와 관아, 옥사와 창고, 연지와 빨래터 등이 잘 남아있어 조선 시대 읍성의 전모를 보여줍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은 태종 18년(1418)부터 축조하여 70여 년 후 성종 22년(1491)에 완성한 석성입니다.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해미읍성은 둘레 1,800m, 높이 5m이며,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병영성으로서 서해안 일대의 방어를 위해 쌓은 군사용 읍성입니다. 조선 말 1천여 명의 천주교도들이 처형된 천주교 성지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지난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여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 복원 사업을 통해 성안에서 관아 터 등을 발굴하여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읍성 기념 우표의 전지에는 조선 시대 지방 지도 중 유명한 ‘전라도무장현도’가 담겨 있어 과거의 읍성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우표를 통해 우리나라 3대 읍성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보존이 잘 되어 그 가치가 높은 읍성들을 차례로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출처 : 우체국 홈페이지


전북 고창읍성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가 된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순천 낙안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낙안읍성 → 순천 낙안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서산해미읍성 - 한국관광공사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졌으며,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서산해미읍성 - 한국관광공사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40-1. 서산 해미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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